신인상 공모 시부문 당선작 심사평

심사 : 마경덕, 김형락

"희망" 이라는 지느러미

본심에 오른 작품은 김영석의 "지느러미" 외 4편.

김영석의 작품들은 탄탄한 습작기를 거친 듯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치밀하고 적당
한 무게를 지녀 選者의 눈길을 끌었다. 차분함 속에 치열함이 돋보인 김영석의 작품들은 주제가 분
명하고 힘이 있다. 무엇보다 김영석은 시를 다루는 태도가 미덥고 진지하다.

"지느러리"에서는 삶에 길들여져 꿈을 잃어가는 중년의 좌절을 통해 인생의 허무함과 삶의 치열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지느러미"는 세상을 항해 하다가 밤늦게 돌아온 가장의 지친 일상을 "다림질"과
접목시켜 일으켜 세운다. 거친 바다로 다시 나설 수 있는 것은 "희망"이라는 지느러미가 있기 때문
이다.

"끊는 주전자", "그녀는 빨래중"에서도 김영석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허무한 일상들을 희망으
로 일으켜 세우는 그의 시적 상념들은 삶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무엇보다 건강한 시를 지향하
는 자세가 바람직 하였다.

- 목 차 -

                                                  *  사라진다는 건

                                    *  당선소감

지느러미

늦은 밤 다림질하는 여자, 손길이 사뭇 진지하다

먼 항해에서 돌아 온 나는 늘 피로에 축 늘어져있다

조심스럽게 때로는 한껏 거칠 게 구겨진 깃에 빳빳한 힘을 불어넣고

무뎌진 핏줄을 끌어당겨 날카로운 현실감각을 세우고는

어쩌겠어요 이렇게 살아가는 거지요

언제부터인가 나는 발기되지 않는다 솟대처럼 갈망의 높이었다가

펄떡이는 숭어의 생명이었다가 파도에 잘 길들여진 후 부터는

고개를 조아리는 일상이 습관이 되어 버린,

관성으로 열려오는 하루 저항없이 익숙한 물길에 몸을 실으며

이젠 없이도 갈 수 있으리라던 갈매기 조나단처럼

젊은 날 푸르던 이상이 생각나는 것이다

긴장을 놓쳐 버린 둥뼈 그녀의 손놀림은 정확하다

비창조적이지만 팽팽한 시위를 걸어 놓는다

내일도 나는 바다로 달려갈 것이다

지느러미 하나 꼿꼿이 가슴 속에 간직한다는 건

때론 무력감을 부추겨 외면하고 싶지만 가끔은

죽은 신경을 자극해선 불쑥, 희망을 일으며 세우기도 할 것이다

다림질을 끝낸 여자가 품으로 안겨온다

그나마 살아있는 동안 좌초된 배처럼 쉽게 기울어 질 일도

바다 깊이 가라앉을 일도 없으리란 걸 그녀는 알고 있다

날마다 죽고 날마다 다시 일어서듯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

<목차료>

주전자

끊는 주전자

나른한 한낮 권태기 방심을 뚫고
고함소리 찢어진다

모자라면 이내 갈증에 허덕이기에
항상 물이 필요하지만
넘치면 터져 오르듯 나만으로도 채울 수 없는
저만의 여유 공간도 있어야 한다는,

사랑은 기교가 따라야함을
사십연줄에야 알 게 되었지만
정작, 살아가는 것이 어이 한 사람만의 몫일까
불어 켜진 이후 줄곧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나의 몫일 터

깜박 깜박 졸고 있는 사이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 부글부글 끊다가
급기야 바닥을 드러내고야 마는, 하마
그 속은 숯검댕이로 가득할 것이다

쉭쉭 경고음 소리마저 잦아들고
벌겋게 상기된 얼굴
허겁지겁 때늦은 진화에 하얀 한숨 오르고
여진히 식지 않은 그녀의 분기에
펄쩍, 한낮의 잠은 소스라 친다

<목차료>

빨래중

그녀는 빨래중

젖은 날개들이 풀썩 빨랫줄에 내려앉는다

여전히 희망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들

축 늘어진 어깨가 무겁다

언제부터 물들어 갔는지 풀 색의 빛깔로

씻고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들

감쪽같이 짜기운 깃들이 보풀져서는 눈시울이 먹먹하다

오늘도 가슴으로만 남았을 창공,

도시의 어느 모퉁이를 저토록 배회하였을까

그 사람 날개에서는 마른 콘크리드 냄새가 난다

먹빛으로 번져오는 밤 옷깃에 묻어온 허공의 서늘하다

푸드득 푸드윽 몰 때를 털어낸 깃들이 등즐기에 내 걸린다

배란다 창문으로 스며든 푸른 달빛

뚝 뚝 끝내 눈물이 떨어진다

정화(淨化), 뺏속 깊숙이

그녀는 단 한 방울의 눈물바저도

다 짜내고야 말 것이다

<목차료>

빙하기

빙하기 맘모스

시간이 겁으로 쌓인 눈 퇴적층

빗물에 씻겨간 틈 사이로

어금니 화석이 드러나 있다

단단한 만년 빙하를 조심스레 깨어

움츠려 있던 뼈를 수습한다

무거운 몸통을 지고 싶일월에서 이월까지

먼 길을 걸었던 듯 다리 와 척추 마디마디엔

븍극 바람이 흝고 간 염증의 흔적이 보인다

자연사, 노쇠해서 죽은 것이다

심장을 감싸 안았을 가슴뼈엔

세월을 거슬러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다

뜨거운 칠팔월의 태양 빛을 모드던 그도

자기만의 방식대로 사랑하고

슬퍼하던 일이 있었다은 것이다

얼음장 처럼 차갑기만 하리라던 가설이 무너지고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 확인된다

또 하나의 생명이며 종의 기원, 겨울 연대기이다

긴 여정 끝에 푸른 초원을 목전에 두고

함지박 같던 두 눈은 잠들어 있다

여기까지가 그의 삶이다

마지막 남은 하나까지 뼈를 수습한다

과거 속에서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

겨울은 또 하나의 화석이 된다.

<목차료>

사라진..

사라진다는 건

매미 울음 멎는 순간,

늦여름 앞마당은 한 컷의 스틸 사진처럼 고요하다

젖은 광목천에 몸을 맡긴 채

팽팽하던 빨랬줄, 허공은 활처럼 휘어지고

찰칵, 찰칵 연속 움직임으로

날개 하나 그늘 속으로 무너지고 있다

한 낮의 적멸, 누군가 떠나간다

그가 떠나간 무화과 나무 그늘은

사슴 동공처럼 깊고 푸르다

산다는 건 광목천 같은 날들 젖어 가는 일

어느 즈음에 날개하나 걸어두는 일

허공의 주임을 움켜쥐는 것이다

사라진다는 건 저마다의 무게로 허공을 놓는 일,

허공이 되는 것이다

젖은 광목천 시나브로 가벼워지듯

매미날개 떨어지듯

<목차료>

소감

소감 당선 소감

"문예감성" 전신이었던 "등단문"에 설레임과 호기심으로 처음 문을 두드리던 때가 기억이 남니다.

2003년 봄, 목련꽃이 흐드러지다 질 무렵이었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시를 쓰고 싶다던 생각에 지독한 몸살을 앓았던 것이. . . . .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시가 여전히 무엇인지 모르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미친 듯 달려가다가도 막다른 골목에서 황망히 뒤돌아 서거나 어떨 땐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기도

합니다.

시의 세상에 저는 늘 이방인이고 제게 있어 시는 늘 낮선 미지의 세상입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이, 시인이란 말을 함부로 듣는다는 것이. . . .

추산 선생님과 산방거인님 그리고 글동네 박서영님과 여러 문우님들의 따뜻한 배려와 권유가 무

척 황송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영광과 책임, 염치를 무릅쓰고 마다하지 못합니다. 이순간 부족한 내 자신이 더욱

부끄럽지만, 대신 더욱 정진하겠다는 말씀 올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달 게 받겠습니다.

"문예감성"의 무한한 발전과 여러 문우님들의 건승을 빕니다.

- 약력 -

전 등단문 형설동인/ 2002 글동네 회원. 현재 공무원 재직중

<목차료>